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 말씀 욥기와 누가복음 말씀인데요.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욥기 39장 27절 말씀입니다.
독수리가 하늘 높이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네 명령을 따른 것이냐.
누가복음 12장의 말씀입니다. 28절에서부터 31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느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창조절을 맞이하면서 지난주에도 욥기를 봤고요. 그리고 이번 주도 욥기가 있는데 욥기를 쭉 보시면은 계속 네가 이거를 잘 알고 있느냐 알고 있으면 대답 좀 해봐라 이런 하느님의 다그침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여러 그 창조물들을 구체적으로 예시를 하면서 묻고 계신데요. 오늘 이제 39절 39장 마지막에는 이제 독수리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죠.
성서에 독수리는 굉장히 잘 등장을 하는 편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독수리와 관련된 성서 구절 중에 가장 잘 기억하고 계신 구절은 아마 이사야 40장 독수리, 외우실 수 있는 암송하실 수 있는 분 계세요? 뭐 옛날 그 개역 버전을 하면 뭐 주를 앙망하는 자 해서 독수리에게 새 힘을 주듯이 높이 올라간다. 이제 이런 구절이 이제 이사야서에 있고요.
보통 뭐 우리가 잘 독수리에 대해서 알다시피 굉장히 빠르고 그리고 힘차고 높이 날고 이제 이런 그 젊음을 나타내고 하는 어떤 상징처럼 독수리가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이제 독수리 같은 경우는 먹을 수 없는 새 레위기에 이제 뭐 먹어라 먹지 말아라 이런 명단이 나오는데 먹을 수 없는 새 명단에 이제 쭉 독수리가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또 한 가지 생각이 되는 게 연상이 되는 게 보통 북미든 남미든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라는 거죠.
그래서 독수리와 관련된 연상들을 하면서 이제 원주민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원주민들을 떠올리면서 더더군다나 우리가 창조절에 있어서 인간, 사람이 무엇이냐 생각했을 때 더 더할 수 없이 좋은 참 하나의 사람의 어떤 예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원래 저희가 인디언 인디언 하지만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거는 안 된다라는 거 아시죠? 굉장히 서양 사람들의 눈으로 그냥 이렇게 불려진 인도 사람과 비슷한 류의 어떤 인종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제 그야말로 뭐라 그럴까요? 원래부터 애초부터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저희가 이제 원주민이라고 고쳐 부르는데요.
이 원주민들 같은 경우 사실 원주민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각 대륙별로 갖고 있는 굉장히 토착적인 신앙이 사실은 굉장히 사람 자체를 그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물 중에 우리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창조물 중에 일부라고 여기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깔려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주민들도 마찬가지인데요. 항상 이 전체에 그냥 우리는 한 부분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상대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자연물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러한 부분들이 항상 어느 기독교가 들어갈 때 선교사들과 마찰을 빚었었던 부분하고도 나왔지만 마치 이제 다신 숭배를 한다거나 뭐든 기독교에서 허용하지 않는 그러니까 유일신을 믿지 않는 이들로 이제 굉장히 종교적인 편견의 잣대로 재단하기 일쑤였고 그런 것들로 인해서 원주민들의 역사를 좀 여러분들이 아시는 분들 좀 관심 있는 분들 보셨겠지만 상당히 처참한 역사들을 지내왔고 그 처참한 역사의 대부분은 살육당하고 그리고 폭력에 의해서 제거되고 그리고 종교와 결합해서 이 사람들을 어떤 그러니까 일종의 미개한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교육을 시켜야 된다라는 입장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기숙사 다 집어넣으면서 그 그네들의 어떤 규율에 집어넣기 위해서 승화를 시키다가 사실 상당 부분 아주 어린 아이 여성 아이들의 성폭력 사건은 비일비재했고요.
그래서 나중에 좀 이것도 한 10여 년 지난 일이긴 합니다만 캐나다 연합교회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서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폭력에 가담했다라는 것으로 해서 교단적으로 죄책 고백을 했고요. 그 죄책 고백의 대가로 원주민들을 위한 그야말로 그 모든 재산을 내어놓고 하는 그런 일들도 했었습니다. 하여튼 지금 우리가 다시 볼 때는 굉장히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연과 합체가 되어서 살았던 그네들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이런 부분들이라는 거죠.
일단 원주민들을 떠올리면 이 대지, 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여러분들 그런 표현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관계들을 공경하라고 해서 마음으로 마음에서부터 와닿는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어머니 대지로부터 나온 것들 중에 정말 필요한 것들 이외에 어떤 이익을 남기는 잉여의 부분들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들이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사실은 그런 것들은 성서하고도 잇닿은 부분이 있죠. 다 갖지 말고 누군가 주워 먹을 부분들을 남겨 놓으라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 자연의 리듬을 따라서 해와 함께 일어나고 해와 함께 잠들고 이런 거 있는데 굉장히 기초적인 것 같지만 우리 굉장히 안 지키잖아요. 해가 떠도 안 일어나고 해가 져도 안 자고 저 사실은 그런 모든 우리 현대인의 삶의 패턴이 자연을 거스르는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튼 그런 원주민들에게 항상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너희들이 믿는 신은 누구냐라고 얘기했을 때 한 원주민 우리가 아까 기도도 이제 원주민 쪽의 기도문을 썼습니다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뭐라고 부르냐 하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한 분이라고 우리는 부르는데 우리가 너희들이 말하는 그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 보고 맨날 나무를 믿고 무슨 그 나무 파이프를 숭배하고 독수리를 숭배하고 그렇다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것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을 텐데 우리까지 직접적으로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일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들을 올려달라라고 그렇게 통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저희가 그 지혜를 통해서 한 가지 복음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묵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복음서 오늘 본 누가복음 12장 말씀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이잖아요. 다 백합꽃도 다 입히시고 하시는데 왜 너희가 먹을 거 입을 거 걱정하느냐 이런 이야기고 이것과 관련해서 사실은 이제 염려하지 말아라라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말처럼 이게 염려하지 말아라가 쉬운 것이어야 말이죠.
그러면서 제가 오늘 그 제목으로 붙인 이 독수리 깃털이라는 하나의 이제 이야기와 더불어서 어떤 소리와 관련해서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는데요. 이 원주민 부락에 살고 있었던 그러면서 원주민으로서 직업이 우체부였던 한 분이 오랜 시절부터 이 독수리 깃털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주는 힘과 지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독수리 깃털은 생각처럼 얻기가 쉽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편지를 배달해 주던 이 사람은 내가 이쪽저쪽 다닐 수 있으니까 언젠가는 내가 이 독수리 깃털을 가질 수 있겠지 하는 바람으로 사실은 편지를 줄 때 어떤 사연과 더불어서 이 전달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신경을 더 쓰고 마음을 주고 했었어야 되는데, 그냥 이것은 의례적인 행동이고 그의 온통 모든 관심은 독수리 깃털에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할 수 있다시피 독수리 깃털은 얻기가 힘들었고 하루가 가고 10년이 가고 20년이 가고 그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가족들이 다 그를 외면하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이렇게 신에게 얘기한다라는 것이죠.
내가 이렇게 독수리 깃털을 얻기를 바랐는데 영 나는 그 독수리 깃털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되는가 봅니다. 그래서 오늘부로 나는 독수리 깃털을 내 평생에 하나 얻게 해달라고 하는 이 기도 제목 오늘로 그냥 끝입니다. 끝. 더 이상 독수리 깃털 안 찾겠습니다.
그 얘기를 끝내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같이 하늘에서 독수리 털이 내려오는 것이죠. 여러분 그 얘기 다 아실 겁니다. 내가 정말 갖고자 원했던 그 소유물을 포기하는 그 순간 그것이 나한테 온다라는 것이죠. 근데 그것은 어떤 물질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요. 어떤 나의 꿈과 이상을 담은 그 어떤 상징성을 지닌 무엇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누가복음 12장을 다시 한번 보는 거죠.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느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비슷한 말씀은 사실 도마복음에도 있습니다. 이따가 오후에 우리가 정통과 이단 하면서 영지주의 얘기도 잠깐 나올 것 같습니다만 도마복음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백합보다 나으니 그들은 세울 수도 젖을 수도 없으니라. 그리고 너희들은 옷이 없으니 무엇을 입을 것인가 누가 너희 키를 더할 것인가 그분이야말로 너희에게 옷을 주실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느냐 너희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느냐.
그다음에 사실 성서에서 질문과 우리의 현실은 굉장히 다릅니다. 여러분들 목숨을 부지하려고 먹는 거 걱정하십니까? 아까도 어린이 하늘뜻에 나왔듯이 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입을 것을 걱정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나를 먹여주셨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두 번째는 정말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그분은 아시는 걸까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심 때문에 자꾸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지만 늘 걱정을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 질문을 잠깐 여러분들께 시간을 드릴 테니까요. 아 곁에 있는 한 세 분 정도와 한 1분 정도 침묵 가운데 두 가지 질문을 새겨보시고 제가 그만하라는 그 시간까지 세 분 정도 하고 자기의 속마음을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첫 번째 어떻게 먹여주셨으면 좋겠는지 그거를 구체적으로 나를 어떻게 먹여주셨으면 좋겠는지 그다음 두 번째는 정말 당신 아십니까? 내가 뭐가 필요한지 아십니까라는 그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면 입니다. 몸을 살짝 틀으셔서요.
자 이제 한 2분 정도 시간을 더 드리는데 올해가 다 가기 전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제목들을 짧게 아주 짧게 나누시고 마무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2장 3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제가 두 절씩 읽을 테니까 따라 읽어 주실까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하느님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독수리 얘기가 나와서 독수리 얘기 3탄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한 사냥꾼이 쏜 팔에 독수리의 심장이 관통하면서 독수리가 땅에 떨어져 죽어가기 직전입니다. 독수리가 죽어가면서 숨을 헐떡이면서 자기 가슴을 보니 바로 그 화살이 자기 깃털로 만든 화살이었다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독수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어떤 무기보다도 내 안에서 나온 그 무기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합니다.
우리에게 커다란 깨달음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침묵 가운데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 말씀 욥기와 누가복음 말씀인데요.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욥기 39장 27절 말씀입니다.
독수리가 하늘 높이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네 명령을 따른 것이냐.
누가복음 12장의 말씀입니다. 28절에서부터 31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느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창조절을 맞이하면서 지난주에도 욥기를 봤고요. 그리고 이번 주도 욥기가 있는데 욥기를 쭉 보시면은 계속 네가 이거를 잘 알고 있느냐 알고 있으면 대답 좀 해봐라 이런 하느님의 다그침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여러 그 창조물들을 구체적으로 예시를 하면서 묻고 계신데요. 오늘 이제 39절 39장 마지막에는 이제 독수리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죠.
성서에 독수리는 굉장히 잘 등장을 하는 편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독수리와 관련된 성서 구절 중에 가장 잘 기억하고 계신 구절은 아마 이사야 40장 독수리, 외우실 수 있는 암송하실 수 있는 분 계세요? 뭐 옛날 그 개역 버전을 하면 뭐 주를 앙망하는 자 해서 독수리에게 새 힘을 주듯이 높이 올라간다. 이제 이런 구절이 이제 이사야서에 있고요.
보통 뭐 우리가 잘 독수리에 대해서 알다시피 굉장히 빠르고 그리고 힘차고 높이 날고 이제 이런 그 젊음을 나타내고 하는 어떤 상징처럼 독수리가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이제 독수리 같은 경우는 먹을 수 없는 새 레위기에 이제 뭐 먹어라 먹지 말아라 이런 명단이 나오는데 먹을 수 없는 새 명단에 이제 쭉 독수리가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또 한 가지 생각이 되는 게 연상이 되는 게 보통 북미든 남미든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라는 거죠.
그래서 독수리와 관련된 연상들을 하면서 이제 원주민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원주민들을 떠올리면서 더더군다나 우리가 창조절에 있어서 인간, 사람이 무엇이냐 생각했을 때 더 더할 수 없이 좋은 참 하나의 사람의 어떤 예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원래 저희가 인디언 인디언 하지만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거는 안 된다라는 거 아시죠? 굉장히 서양 사람들의 눈으로 그냥 이렇게 불려진 인도 사람과 비슷한 류의 어떤 인종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제 그야말로 뭐라 그럴까요? 원래부터 애초부터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저희가 이제 원주민이라고 고쳐 부르는데요.
이 원주민들 같은 경우 사실 원주민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각 대륙별로 갖고 있는 굉장히 토착적인 신앙이 사실은 굉장히 사람 자체를 그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물 중에 우리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창조물 중에 일부라고 여기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깔려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주민들도 마찬가지인데요. 항상 이 전체에 그냥 우리는 한 부분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상대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자연물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러한 부분들이 항상 어느 기독교가 들어갈 때 선교사들과 마찰을 빚었었던 부분하고도 나왔지만 마치 이제 다신 숭배를 한다거나 뭐든 기독교에서 허용하지 않는 그러니까 유일신을 믿지 않는 이들로 이제 굉장히 종교적인 편견의 잣대로 재단하기 일쑤였고 그런 것들로 인해서 원주민들의 역사를 좀 여러분들이 아시는 분들 좀 관심 있는 분들 보셨겠지만 상당히 처참한 역사들을 지내왔고 그 처참한 역사의 대부분은 살육당하고 그리고 폭력에 의해서 제거되고 그리고 종교와 결합해서 이 사람들을 어떤 그러니까 일종의 미개한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교육을 시켜야 된다라는 입장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기숙사 다 집어넣으면서 그 그네들의 어떤 규율에 집어넣기 위해서 승화를 시키다가 사실 상당 부분 아주 어린 아이 여성 아이들의 성폭력 사건은 비일비재했고요.
그래서 나중에 좀 이것도 한 10여 년 지난 일이긴 합니다만 캐나다 연합교회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서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폭력에 가담했다라는 것으로 해서 교단적으로 죄책 고백을 했고요. 그 죄책 고백의 대가로 원주민들을 위한 그야말로 그 모든 재산을 내어놓고 하는 그런 일들도 했었습니다. 하여튼 지금 우리가 다시 볼 때는 굉장히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연과 합체가 되어서 살았던 그네들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이런 부분들이라는 거죠.
일단 원주민들을 떠올리면 이 대지, 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여러분들 그런 표현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관계들을 공경하라고 해서 마음으로 마음에서부터 와닿는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어머니 대지로부터 나온 것들 중에 정말 필요한 것들 이외에 어떤 이익을 남기는 잉여의 부분들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들이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사실은 그런 것들은 성서하고도 잇닿은 부분이 있죠. 다 갖지 말고 누군가 주워 먹을 부분들을 남겨 놓으라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 자연의 리듬을 따라서 해와 함께 일어나고 해와 함께 잠들고 이런 거 있는데 굉장히 기초적인 것 같지만 우리 굉장히 안 지키잖아요. 해가 떠도 안 일어나고 해가 져도 안 자고 저 사실은 그런 모든 우리 현대인의 삶의 패턴이 자연을 거스르는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튼 그런 원주민들에게 항상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너희들이 믿는 신은 누구냐라고 얘기했을 때 한 원주민 우리가 아까 기도도 이제 원주민 쪽의 기도문을 썼습니다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뭐라고 부르냐 하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한 분이라고 우리는 부르는데 우리가 너희들이 말하는 그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 보고 맨날 나무를 믿고 무슨 그 나무 파이프를 숭배하고 독수리를 숭배하고 그렇다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것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을 텐데 우리까지 직접적으로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일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들을 올려달라라고 그렇게 통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저희가 그 지혜를 통해서 한 가지 복음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묵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복음서 오늘 본 누가복음 12장 말씀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이잖아요. 다 백합꽃도 다 입히시고 하시는데 왜 너희가 먹을 거 입을 거 걱정하느냐 이런 이야기고 이것과 관련해서 사실은 이제 염려하지 말아라라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말처럼 이게 염려하지 말아라가 쉬운 것이어야 말이죠.
그러면서 제가 오늘 그 제목으로 붙인 이 독수리 깃털이라는 하나의 이제 이야기와 더불어서 어떤 소리와 관련해서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는데요. 이 원주민 부락에 살고 있었던 그러면서 원주민으로서 직업이 우체부였던 한 분이 오랜 시절부터 이 독수리 깃털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주는 힘과 지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독수리 깃털은 생각처럼 얻기가 쉽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편지를 배달해 주던 이 사람은 내가 이쪽저쪽 다닐 수 있으니까 언젠가는 내가 이 독수리 깃털을 가질 수 있겠지 하는 바람으로 사실은 편지를 줄 때 어떤 사연과 더불어서 이 전달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신경을 더 쓰고 마음을 주고 했었어야 되는데, 그냥 이것은 의례적인 행동이고 그의 온통 모든 관심은 독수리 깃털에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할 수 있다시피 독수리 깃털은 얻기가 힘들었고 하루가 가고 10년이 가고 20년이 가고 그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가족들이 다 그를 외면하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이렇게 신에게 얘기한다라는 것이죠.
내가 이렇게 독수리 깃털을 얻기를 바랐는데 영 나는 그 독수리 깃털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되는가 봅니다. 그래서 오늘부로 나는 독수리 깃털을 내 평생에 하나 얻게 해달라고 하는 이 기도 제목 오늘로 그냥 끝입니다. 끝. 더 이상 독수리 깃털 안 찾겠습니다.
그 얘기를 끝내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같이 하늘에서 독수리 털이 내려오는 것이죠. 여러분 그 얘기 다 아실 겁니다. 내가 정말 갖고자 원했던 그 소유물을 포기하는 그 순간 그것이 나한테 온다라는 것이죠. 근데 그것은 어떤 물질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요. 어떤 나의 꿈과 이상을 담은 그 어떤 상징성을 지닌 무엇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누가복음 12장을 다시 한번 보는 거죠.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느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비슷한 말씀은 사실 도마복음에도 있습니다. 이따가 오후에 우리가 정통과 이단 하면서 영지주의 얘기도 잠깐 나올 것 같습니다만 도마복음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백합보다 나으니 그들은 세울 수도 젖을 수도 없으니라. 그리고 너희들은 옷이 없으니 무엇을 입을 것인가 누가 너희 키를 더할 것인가 그분이야말로 너희에게 옷을 주실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느냐 너희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느냐.
그다음에 사실 성서에서 질문과 우리의 현실은 굉장히 다릅니다. 여러분들 목숨을 부지하려고 먹는 거 걱정하십니까? 아까도 어린이 하늘뜻에 나왔듯이 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입을 것을 걱정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나를 먹여주셨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두 번째는 정말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그분은 아시는 걸까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심 때문에 자꾸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지만 늘 걱정을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 질문을 잠깐 여러분들께 시간을 드릴 테니까요. 아 곁에 있는 한 세 분 정도와 한 1분 정도 침묵 가운데 두 가지 질문을 새겨보시고 제가 그만하라는 그 시간까지 세 분 정도 하고 자기의 속마음을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첫 번째 어떻게 먹여주셨으면 좋겠는지 그거를 구체적으로 나를 어떻게 먹여주셨으면 좋겠는지 그다음 두 번째는 정말 당신 아십니까? 내가 뭐가 필요한지 아십니까라는 그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면 입니다. 몸을 살짝 틀으셔서요.
자 이제 한 2분 정도 시간을 더 드리는데 올해가 다 가기 전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제목들을 짧게 아주 짧게 나누시고 마무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2장 3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제가 두 절씩 읽을 테니까 따라 읽어 주실까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하느님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독수리 얘기가 나와서 독수리 얘기 3탄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한 사냥꾼이 쏜 팔에 독수리의 심장이 관통하면서 독수리가 땅에 떨어져 죽어가기 직전입니다. 독수리가 죽어가면서 숨을 헐떡이면서 자기 가슴을 보니 바로 그 화살이 자기 깃털로 만든 화살이었다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독수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어떤 무기보다도 내 안에서 나온 그 무기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합니다.
우리에게 커다란 깨달음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침묵 가운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