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인터뷰 |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대표·조화영 활동가

"우리가 다 서로의 나무가 될 수 있도록" - 기도를 다르게 한 사람, 임보라를 기억하며
기념사업회 발족식에서 잊지 못할 축하 공연을 선물해 준 장애여성공감. 임보라 목사는 이곳의 후원회원이었습니다. 지난 5월 21일,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대표와 조화영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화영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이면서 한때 섬돌향린교회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는 자주 웃음으로, 또 몇 번은 눈물로 멈췄습니다.
🌿 임보라 목사님을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나시나요?
이진희: 2013년이었던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가 철회 압박을 받던 때, 국회 앞마당에서 피케팅을 하는데 저쪽에서 기독교 세력들이 "우리 며느리가 남자라니" 같은 말로 혐오를 쏟아내던 시기였어요. 그때 목사님이 그쪽을 가리키면서 "이 독사의 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독사여, 멈추시오"라고 발언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독사? 성경에 그런 말이 있나요? (웃음) 연극배우처럼 우렁차게 딱 꼬집으셨어요. 우리를 괴롭히는 조건을 저렇게 시원하게 비판하는 순간, 오히려 평온함과 치유의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 어떤 욕보다 시원했어요. 기독교인에게 그들의 언어로 똑같이 돌려주시는 모습. 그러면서 의지하게 된 거죠.
조화영: 2018년쯤 목사님이 장애여성공감을 '하늘 뜻 펴기'에 초대해 주셨던 날이 기억나요. 그전에도 집회에서 자주 뵀어요. 호루라기 불고, 차별금지법 투쟁할 때. 2015년인가 그랬어요. 뒤에 따뜻한 기운이 있어서 돌아봤는데 깃발이 보였어요. 진한 핑크색. 글씨를 봤는데 '섬돌'이라고 적혀 있어서. 목사님이 뒤에서 지켜 주셨던 거예요. 힘들지 않게, 옆에서 지켜 주신 거예요. 너무나 감사하… 울지 않기로 했는데. (안 울기) 힘들잖아요. 차별금지법부터 장애인의 날 투쟁까지 곳곳에 출동, 늘 다 오셨어요. 목사님은 언제든 나타나는 목사님이니까요. 늘 뒤에서 지켜 주는 목사님.
🌿 화영 님은 활동가이면서 섬돌향린교회에 다니기도 하셨는데요, 그곳에 머물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조화영: 전에 다니던 교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성소수자 혐오를 하신 거예요. 그런 친구랑 놀지 말라고. 무서워서 뛰쳐나왔어요. 하지만 섬돌은 평화로워요. 편안하고, 차별하지 않고.
섬돌에서는 밥 먹고 나면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데, 보라 목사님이 자주 지셨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목사님, 그거는 제가 할게요." 했어요. 목사님이 편하게 계시면 좋을 것 같아서.
🌿 대표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목사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진희: 문자 한 통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2022년 겨울쯤이었나. 교회 교우 중에 장애가 있는 분이 계시는데 성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 이분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어떤 얘기를 나누면 좋을까요. 하면서 문자를 보내오셨어요.
저희한테 그런 문의가 많이 오긴 해요. 그런데 목사라는 위치에서 보내시는 분은 처음이었어요. 임보라 목사님은 제가 "발언 좀 해 주세요" 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힘 있게 아울러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분이 저한테 어떤 지원이 필요하겠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제가 그때 잘 대답해야 할 것 같아서 빨리 대답을 못 했어요. 뒤늦게 답을 보냈는데 만남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듣고 나서, 그걸 자신이 더 알아야 하고 변화해야 할 계기로 삼으시는 분. 그게…(울먹) 죄송합니다. 목사님 돌아가시고 나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도 활동의 습관이 있잖아요. 이런 사례는 이렇게, 저런 사례는 저렇게. 그런데 저도 다르게 대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분이 다르게 행동하시니까 나도 다르게 응답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장애여성운동을 만나 보려고 노크하시는 걸로도 느껴졌고요.
🌿 목사님이 남기신 말 중에 특별히 마음에 품고 계신 것이 있다면요?
이진희: "삶을 투신하지 않으면 결코 삶을 얻지 못하리니." 그런데 목사님은 이걸 무겁지 않게 보여주셨어요. 나를 새롭게 구성하려 할 때, 나를 구성하는 건 결국 나를 의미 있게 바라봐 주는 타인이거든요. 그러니 나를 찾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타인이라는 거울.
장애여성운동을 하는 저에게 그 말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서로를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렸어요. 저 사람을 구할 수 없으면 나를 구할 수 없어요. 나를 비추는 거울이 깨지면 안 되니까.
환대도 "어서 오세요"가 아니잖아요. 그 교우분한테도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하면 끝났을 일인데 목사님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신 거예요. 관계 안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지고, 싫은 얘기도 해야 되고, 듣고 싶지 않은 얘기도 들어야 하거든요. 그런 환대를 후원회원으로서 몸으로 보여주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조화영: 목사님이 설교 때마다 하시던 한 가지가 있어요. "동물들은 불쌍히 여길 대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살 권리가 있고 모두가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과 똑같이 싸우지 말라고도 하셨어요. 똑같이 싸우면 우리가 똑같이 되니까. 집 앞 뒷산에서 길고양이가 많이 온다고, 밥을 챙겨 주신다고 하셨어요. 동물도 차별받지 않고 사람도 차별받지 않고, 우리가 제일 원하는 걸 같이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가신 것 같아요.
🌿 목사님이 소수자 연대 운동에 남기고 간 씨앗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진희: 저는 종교를 잘 몰라요. 그런데 그분은 계속 질문을 던졌던 분 같아요. 이 시대의 신앙, 믿음이란 무엇인가. 차별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이다. 그 쉬운 말로 사람들을 이해시키면서도 성찰하게 만드는 말을 울려 퍼지게 해 준 분.
많은 사람이 기도하잖아요. "저 사람 사라지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는데, 목사님은 우리가 같이 믿고 기도해야 할 게 무엇인지 계속 물으셨어요. 기도를 다르게 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든든하게 쉴 수 있는 그늘이면서, 동시에 싸울 수 있는 언어와 힘을 같이 주셨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반성폭력을 위한 바이스탠더 모임을 꾸리고 계셨더라고요. 함께 기도해야 할 주제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걸 찾으셨던 것 같아요.
2013년에 <뉴스앤조이>에 쓰신 '저들은 왜 차별금지법에 올인하는가'를 다시 읽었어요. 직설적인 말을 쓰는데 포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배우고 싶은데 참 어려워요. 그 글에서 목사님은, 보수 기독교가 동성애를 특정 성행위로 환원해 겁박하는 방식을 미국 사례까지 직접 찾아 반박하고 계세요. 2013년에 이미요.
지금 저희는 그 언어를 되받아 '돌봄'의 언어로 바꾸는 이야기를 합니다. 장애여성이 자기 몸을 수치심 없이 말하고, 필요한 돌봄을 부끄럽지 않게 요구하는 것. 그것도 같이 배우고 즐겁게 살자는 거예요. 그런 새로운 기도의 정신인 것 같아요.
너무 힘들면 나밖에 안 보이거든요. 차별받고 자원 없고 고립된 사람들이요. 그런데 고립된 그 처지로부터 우리의 힘이 생겨날 수 있다. 목사님이 그 방법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 기념사업회가 가꾸려는 '초록나무 숲'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기를 바라시나요?
조화영: 목사님이 원하던 길, 목사님이 제일 원하던 유산. 그거에 함께 가고 싶어요.
이진희: 저는 '사회적 심방'이라는 표현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심방에 저항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독교인만의 것으로 생각했던 게 서로를 위한 것, 모두를 위한 것이 되는 거잖아요. 연대 발언도 기도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다른 방식의 기도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목사님은 씨앗을 뿌리는 방식 자체가 달랐던 것 같아요. 본인이 움직이면서 뿌리는. 탈권위적으로 계속 그러셨던 모습을 잘 기억해 내면서, 지금에 필요한 실천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도가 중요하고, 돌봄이 중요해요. 기도로 서로를 돌보는 실천. "나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말고, 서로를 돌보는 기도요.
그런데 우리가 "내가 임보라다." 같은 선언은 안 할 것 같아요. 결이 다르잖아요. 목사님은 늘 뒤에 서 있던 사람이니까. 우리도 누군가를 뒤에서 밀어주는 것, 누군가가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되게 중요한 돌봄인 것 같아요. 앞에 나서는 사람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 지지대가 되어 주는 사람도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임보라다, 가 아니라 우리가 다 서로의 나무가 되어주고, 우리가 숲을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 우리가 새로운 숲을 '함께' 만들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 주시면 꼭 참여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원을 망설이는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진희: 저도 이제 곧 씨앗회원으로 함께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웃음) 후원 독려의 말은요… 잠시만요. "지쳐서 기댈 곳이 필요하신 분들, 1만 원이면 언제든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쉴 그늘을 같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의 그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언젠가 내가 쉬고 싶을 때 그늘이 되어 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그늘이 필요하니까요.
조화영: 아낌없이. 목사님이 원하던 길을 같이 가자고요. 목사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데…
(한참 생각하다가) "씨앗은 한 톨의 무게."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모두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한 톨 한 톨의 무게로 든든하게 챙겨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지켜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그러니까 후원해 주세요.
후원자 인터뷰 |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대표·조화영 활동가
"우리가 다 서로의 나무가 될 수 있도록" - 기도를 다르게 한 사람, 임보라를 기억하며
기념사업회 발족식에서 잊지 못할 축하 공연을 선물해 준 장애여성공감. 임보라 목사는 이곳의 후원회원이었습니다. 지난 5월 21일,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대표와 조화영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화영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이면서 한때 섬돌향린교회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는 자주 웃음으로, 또 몇 번은 눈물로 멈췄습니다.
🌿 임보라 목사님을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나시나요?
이진희: 2013년이었던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가 철회 압박을 받던 때, 국회 앞마당에서 피케팅을 하는데 저쪽에서 기독교 세력들이 "우리 며느리가 남자라니" 같은 말로 혐오를 쏟아내던 시기였어요. 그때 목사님이 그쪽을 가리키면서 "이 독사의 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독사여, 멈추시오"라고 발언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독사? 성경에 그런 말이 있나요? (웃음) 연극배우처럼 우렁차게 딱 꼬집으셨어요. 우리를 괴롭히는 조건을 저렇게 시원하게 비판하는 순간, 오히려 평온함과 치유의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 어떤 욕보다 시원했어요. 기독교인에게 그들의 언어로 똑같이 돌려주시는 모습. 그러면서 의지하게 된 거죠.
조화영: 2018년쯤 목사님이 장애여성공감을 '하늘 뜻 펴기'에 초대해 주셨던 날이 기억나요. 그전에도 집회에서 자주 뵀어요. 호루라기 불고, 차별금지법 투쟁할 때. 2015년인가 그랬어요. 뒤에 따뜻한 기운이 있어서 돌아봤는데 깃발이 보였어요. 진한 핑크색. 글씨를 봤는데 '섬돌'이라고 적혀 있어서. 목사님이 뒤에서 지켜 주셨던 거예요. 힘들지 않게, 옆에서 지켜 주신 거예요. 너무나 감사하… 울지 않기로 했는데. (안 울기) 힘들잖아요. 차별금지법부터 장애인의 날 투쟁까지 곳곳에 출동, 늘 다 오셨어요. 목사님은 언제든 나타나는 목사님이니까요. 늘 뒤에서 지켜 주는 목사님.
🌿 화영 님은 활동가이면서 섬돌향린교회에 다니기도 하셨는데요, 그곳에 머물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조화영: 전에 다니던 교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성소수자 혐오를 하신 거예요. 그런 친구랑 놀지 말라고. 무서워서 뛰쳐나왔어요. 하지만 섬돌은 평화로워요. 편안하고, 차별하지 않고.
섬돌에서는 밥 먹고 나면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데, 보라 목사님이 자주 지셨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목사님, 그거는 제가 할게요." 했어요. 목사님이 편하게 계시면 좋을 것 같아서.
🌿 대표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목사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진희: 문자 한 통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2022년 겨울쯤이었나. 교회 교우 중에 장애가 있는 분이 계시는데 성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 이분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어떤 얘기를 나누면 좋을까요. 하면서 문자를 보내오셨어요.
저희한테 그런 문의가 많이 오긴 해요. 그런데 목사라는 위치에서 보내시는 분은 처음이었어요. 임보라 목사님은 제가 "발언 좀 해 주세요" 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힘 있게 아울러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분이 저한테 어떤 지원이 필요하겠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제가 그때 잘 대답해야 할 것 같아서 빨리 대답을 못 했어요. 뒤늦게 답을 보냈는데 만남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듣고 나서, 그걸 자신이 더 알아야 하고 변화해야 할 계기로 삼으시는 분. 그게…(울먹) 죄송합니다. 목사님 돌아가시고 나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도 활동의 습관이 있잖아요. 이런 사례는 이렇게, 저런 사례는 저렇게. 그런데 저도 다르게 대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분이 다르게 행동하시니까 나도 다르게 응답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장애여성운동을 만나 보려고 노크하시는 걸로도 느껴졌고요.
🌿 목사님이 남기신 말 중에 특별히 마음에 품고 계신 것이 있다면요?
이진희: "삶을 투신하지 않으면 결코 삶을 얻지 못하리니." 그런데 목사님은 이걸 무겁지 않게 보여주셨어요. 나를 새롭게 구성하려 할 때, 나를 구성하는 건 결국 나를 의미 있게 바라봐 주는 타인이거든요. 그러니 나를 찾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타인이라는 거울.
장애여성운동을 하는 저에게 그 말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서로를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렸어요. 저 사람을 구할 수 없으면 나를 구할 수 없어요. 나를 비추는 거울이 깨지면 안 되니까.
환대도 "어서 오세요"가 아니잖아요. 그 교우분한테도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하면 끝났을 일인데 목사님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신 거예요. 관계 안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지고, 싫은 얘기도 해야 되고, 듣고 싶지 않은 얘기도 들어야 하거든요. 그런 환대를 후원회원으로서 몸으로 보여주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조화영: 목사님이 설교 때마다 하시던 한 가지가 있어요. "동물들은 불쌍히 여길 대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살 권리가 있고 모두가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과 똑같이 싸우지 말라고도 하셨어요. 똑같이 싸우면 우리가 똑같이 되니까. 집 앞 뒷산에서 길고양이가 많이 온다고, 밥을 챙겨 주신다고 하셨어요. 동물도 차별받지 않고 사람도 차별받지 않고, 우리가 제일 원하는 걸 같이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가신 것 같아요.
🌿 목사님이 소수자 연대 운동에 남기고 간 씨앗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진희: 저는 종교를 잘 몰라요. 그런데 그분은 계속 질문을 던졌던 분 같아요. 이 시대의 신앙, 믿음이란 무엇인가. 차별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이다. 그 쉬운 말로 사람들을 이해시키면서도 성찰하게 만드는 말을 울려 퍼지게 해 준 분.
많은 사람이 기도하잖아요. "저 사람 사라지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는데, 목사님은 우리가 같이 믿고 기도해야 할 게 무엇인지 계속 물으셨어요. 기도를 다르게 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든든하게 쉴 수 있는 그늘이면서, 동시에 싸울 수 있는 언어와 힘을 같이 주셨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반성폭력을 위한 바이스탠더 모임을 꾸리고 계셨더라고요. 함께 기도해야 할 주제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걸 찾으셨던 것 같아요.
2013년에 <뉴스앤조이>에 쓰신 '저들은 왜 차별금지법에 올인하는가'를 다시 읽었어요. 직설적인 말을 쓰는데 포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배우고 싶은데 참 어려워요. 그 글에서 목사님은, 보수 기독교가 동성애를 특정 성행위로 환원해 겁박하는 방식을 미국 사례까지 직접 찾아 반박하고 계세요. 2013년에 이미요.
지금 저희는 그 언어를 되받아 '돌봄'의 언어로 바꾸는 이야기를 합니다. 장애여성이 자기 몸을 수치심 없이 말하고, 필요한 돌봄을 부끄럽지 않게 요구하는 것. 그것도 같이 배우고 즐겁게 살자는 거예요. 그런 새로운 기도의 정신인 것 같아요.
너무 힘들면 나밖에 안 보이거든요. 차별받고 자원 없고 고립된 사람들이요. 그런데 고립된 그 처지로부터 우리의 힘이 생겨날 수 있다. 목사님이 그 방법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 기념사업회가 가꾸려는 '초록나무 숲'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기를 바라시나요?
조화영: 목사님이 원하던 길, 목사님이 제일 원하던 유산. 그거에 함께 가고 싶어요.
이진희: 저는 '사회적 심방'이라는 표현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심방에 저항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독교인만의 것으로 생각했던 게 서로를 위한 것, 모두를 위한 것이 되는 거잖아요. 연대 발언도 기도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다른 방식의 기도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목사님은 씨앗을 뿌리는 방식 자체가 달랐던 것 같아요. 본인이 움직이면서 뿌리는. 탈권위적으로 계속 그러셨던 모습을 잘 기억해 내면서, 지금에 필요한 실천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도가 중요하고, 돌봄이 중요해요. 기도로 서로를 돌보는 실천. "나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말고, 서로를 돌보는 기도요.
그런데 우리가 "내가 임보라다." 같은 선언은 안 할 것 같아요. 결이 다르잖아요. 목사님은 늘 뒤에 서 있던 사람이니까. 우리도 누군가를 뒤에서 밀어주는 것, 누군가가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되게 중요한 돌봄인 것 같아요. 앞에 나서는 사람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 지지대가 되어 주는 사람도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임보라다, 가 아니라 우리가 다 서로의 나무가 되어주고, 우리가 숲을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 우리가 새로운 숲을 '함께' 만들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 주시면 꼭 참여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원을 망설이는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진희: 저도 이제 곧 씨앗회원으로 함께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웃음) 후원 독려의 말은요… 잠시만요. "지쳐서 기댈 곳이 필요하신 분들, 1만 원이면 언제든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쉴 그늘을 같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의 그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언젠가 내가 쉬고 싶을 때 그늘이 되어 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그늘이 필요하니까요.
조화영: 아낌없이. 목사님이 원하던 길을 같이 가자고요. 목사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데…
(한참 생각하다가) "씨앗은 한 톨의 무게."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모두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한 톨 한 톨의 무게로 든든하게 챙겨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지켜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그러니까 후원해 주세요.